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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애덤 스미스와 신자유주의

소소한녀자 핫24시 2021. 3. 18.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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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경제학 경향 역시 이러한 종류의 극단주의를 반영한다. 지난 25년간 지배해온 경제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이었다. GPI 등과 같은 척도로 보면 1970년대부터 삶의 질이 악화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대두와 맞물린다. 이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그 이전의 경제학과는 완전히 다르다. 스미스와 리카도, 케인스 등과 같은 경제학자들이 주장했던 환경 및 사회의 영향은 완전히 무시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회를 붕괴로 이끄는 데 신자유주의 경제학보다 효과적인 체제는 없다. 우리는 좀 더 가까이에서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러한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왜 생기는지 보게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유무역(재화와 노동의 제약 없는 이동), 자본의 제약 없는 이동, 민영화, 규제 완화, 환경 및 사회적 요인의 '외부화' 등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에 가깝다. 민간 기업에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주기 위한 맞춤형 이데올로기로 '외부화'된 비용은 사회에 떠넘긴다. 금전과 비금전적 결과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옹호자들은 인류에게 이익이 골고루 돌아가고 가난을 없애는 대신 어떠한 종류의 규제도 없이 CE0들과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하며, 그것이 전 인류에게 이득을 주고 나아가 빈곤을 없앨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고전파 경제학, 특히 애덤 스미스의 학설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초기 경제학자들은 매우 다른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었다. 그들의 이론은 인간 및 사회적 영향을 자각하고 있었다. 고전파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린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열심히 추구하면 자원이 효율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사회 전체로도 큰 이익이 된다는 이론으로 유명하다. 신자유주의 자들은 고전파 경제학의 이러한 면을 탐욕과 규제 완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용하곤 한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는 결코 신자유주의를 찬성하지 않았다. 그는 정부의 규제 하에 소규모 지역 생산자들이 활동하는 세상을 그렸다. 경제 시스템이 '공정하고 정의롭게' 작동하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상업활동에 정부의 규제가 없으면 공공에 대한 음모가 일어난다고 경고했다. 상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활동에 도덕적 제약을 부과할 것이라는 데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규제가 완화된 신자유주의적 시장을 따르고 있는 미국과 일본, 유럽의 많은 거대 기업이 범죄활동, 즉 일반 대중은 물론 자신들의 주주들에게까지도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을 보면 애덤 스미스의 우려가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그는 부의 불균형 확산도 경고했는데, 이 역시 현재 우리가 신자유주의 경제학으로 인해 겪고 있는 문제다.
오늘날에 비추어보면 기업 규제에 있어서 스미스의 고전파 경제학과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세 가지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 첫째로 스미스의 모델에서는 판매자와 구매자들은 가격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커져서는 안 된다. 즉 독점이나 과점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오늘날 다국적 기업들은 국민국가보다 크다. 정치적 영향력도 막강해서 자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저렴한 대출, 막대한 정부 보조금, 세제 혜택, 군사 프로젝트, 공공 자금으로 건설되는 도로와 통신 인프라 등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다. 이들의 시장 영향력은 매매조건을 결정할 정도며, 다른 거대 기업과 연합해 카르텔과 유사한 방식을 통해 중소 판매자와 구매자들이 이탈할 수 없도록 만든다.
중소기업이 자신들의 시장에 진출하면 무자비하게 가격을 깎아내려 퇴출시킨다. 그런 뒤에는 다시 가격을 대폭 올려 소비자들을 착취한다. 적정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통해 기업은 폭리를 취하고, 부적절한 정치적 영향력으로 인해 민주주의는 왜곡된다. 애덤 스미스의 두 번째 원칙은 생산자들이 생산비 전부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원칙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에서는 붕괴되는데, 생산에 따른 사회적 · 환경적 비용이 '외부화'되기 때문이다. 이런 비용이 해당 기업의 손익 계산에서는 빠지고, 그 대신 지역 공동체의 납세자가 부담한다는 얘기다. 그 결과 중소 지역 기업은 퇴출되고, 일자리는 줄어들며, 사회는 와해되고, 임금은 감소하며, 스트레스 완화 및 환경 정화 비용이 늘어난다.
세 번째 차이점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특징인 무제한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이동이다. 스미스는 후에 리카도가 비교우위론학에서 내세웠던 것처럼 자본은 지역적이며 국경을 넘어 이동하지 않는다고 상정했다. 또한 스미스와 리카도는 자본의 흐름이 '점잖을 것'이라고 보았다. 즉 자본은 장기적으로 수익이 가장 많이 나는 곳으로 천천히 흐르며, 단기간에 심각한 불안정을 가져오지 않으리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자본 이동은 스미스가 살던 시대처럼 연 단위가 아닌 초 단위로 측정된다. 자본의 기대 수익도 대수의 법칙 즉 많은 중소 구매자와 판매자)에 따라 안정되는 것이 아니라, 극소수지만 대단히 강력한 힘을 가진 투기적 자본에 의해 재빠르게 변화한다. 이처럼 세계 금융시장이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의 시스템에서는 자본과 화폐 시장이 시시때때로 혼란에 빠지고, 건강한 경제가 말살된다. 자유로운 자본흐름의 문제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지난 20여 년간의 수많은 금융위기를 통해서 충분히 입증되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고전파 경제학과 공통점이 거의 없다. 오히려 언급한 것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차이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이론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여기서 이론이라고 표현한 것은 경험적 연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추측에 의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어떻게 탄생했고 '자유시장'이 왜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지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자유무역에 대한 제약을 모두 제거하면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가난이 줄어들어 지속적인 성장을 하게 되며,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혜택이 돌아가 삶의 질이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그럴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험적 결과는 딴판이다. 성장은 늦고 가난은 늘었으며 실업 및 환경 파괴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거의 이익을 독점해 이미 부자인 세계 인구의 1퍼센트에게 더 많은 기업 이윤이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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