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그저 다른 사람이 계속 말하도록 만든다. 말하고 또 말하라고 은근히 부추기면서 자기 입은 꼭 다물고 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심리학의 아버지인 프로이트가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기술한 그 진실을 숙지하고 있다. 어떤 말이건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말을 풀어놓게만 놔두면 그 사람은 자신의 진짜 감정이나 동기를 절대로 숨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하는 와중에도 자기를 꽁꽁 감추려 최대한 의식적인 노력은 할지라도 어떤 방식으로 건 그는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게 되어 있다. 프로이트는 또한 별 것 아닌 것처럼 슬쩍 흘린 말의 힘이 얼마나 큰지 강조했다. 무의식은 어떻게든 진짜 감정과 생각을 알린다. 그저 우리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듣고 더 나아가 그 말에 어떤 의미나 암시가 담겨 있을지 고민해가며 듣기만 하면 된다. 같은 맥락에서 상대방이 당신의 의중을 모르게 하고 싶다면 아직은 `내 카드`를 보여주고 싶지 않다면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오로지 듣기만 해야 한다. 아무리 꽁꽁 숨기고 감추려 애를 써도 당신이 계속 입을 열고 떠들면 결국 상대는 당신의 속셈을 `알아차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듣기라는 `하얀 마법`이 해주는 멋진 일이 또 있다. 쓸데없는 자의식이나 자기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심리학에서는 `자기 이익`과 `자존감`이란 말이 다른 느낌으로 쓰이지만 사실 자의식에 대한 태도는 예나 오늘이나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한다.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 톤이라든가 어조까지도 신경 쓰며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나에게 맞추어졌던 포커스가 상대에게 돌아간다. 내 모든 신경이나 관심이 그 사람이 말하는 것, 그 사람이 원하는 것, 그 사람이 필요한 것에 쏠리는 순간 나는 자의식에 넘칠 수도, 잘난 척을 할 수도, 다른 사람을 무시할 수도 없다. 포커스가 나에게만 맞춰져 있으면 주변 사람과 주변 환경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내 주변을 잘 관리할 수가 없다. 차창을 통해서 앞에 있는 차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차의 창이 더러운지 깨끗한지만 보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다. 이런 사람이 운전하는 차가 곧 교통사고가 날 거라는 것을 예상하기 위해 힌두의 종교 지도가가 필요하겠는가? 보통 인간관계에서 두 사람이 충돌하는 이유는 둘 중의 하나가 자기 자신에게만 온갖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강하고 나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있을 때에만 다른 사람을 잘 다룬다. 댄서에게 건강한 다리와 발이 필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훌륭한 댄스 교사는 당신에게 그럴 것이다. "발에 힘을 빼고 다리에 신경을 쓰지 말아요." 발을 너무 의식하게 되면 오히려 발을 헛디딘다. 어색하고 기계적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발이나 다리를 의식해 댄스를 망치는 학생들에게 다리를 절단하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운동을 해서 다리의 힘을 더욱 기르라고 말할 것이다. 자기의 다리가 강하다는 것을 알고 그 다리에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댄서는 다리를 잊고 춤을 춘다. 하지만 다리가 너무 약한 사람은 그 점이 들킬까 사람들이 자신의 춤 실력을 알아챌까 편하게 춤추지 못한다. 자의식에 대한 오래전 사고에는 틀린 것이 많다. 우리는 나 자신에 집중하는 건 무조건 좋지 않은 것이며 나에게 관심 갖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기적이고 자아에 열망이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조언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나를 의식하게 되고 나의 시시하고 이기적인 욕망에 집착하게 된다. 사실 자의식의 극복은 나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마음을 나쁘다고 탓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충분히 높이 평가했을 때 자의식이 극복된다. 훌륭한 댄서는 `음악`을 들어야만 한다. 일단 기본적인 스텝을 배웠다면 그다음부터는 춤을 잘 출 수 있는 비결은 의식적으로 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 이제 오른발은 여기에 두는 거야. 그런 다음 왼발을 이쪽으로 옮겨야지." 이렇게 발에 신경을 쓰면 음악을 들을 수가 없고 음악을 듣지 못하면 스텝을 맞출 수가 없다. 훌륭한 댄서는 음악에 집중하면서 발은 그저 할 일을 하게 놔둔다. 사람을 다룰 때도 비슷한 테크닉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자. 불협화음을 내지 않고 하모니를 이루고 싶다면 상대방이 연주하는 음악을 `들어야` 한다. 그의 음악을 듣지 않고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이 친구가 감명받으려면 난 뭘 해줘야 하나?` 같은 생각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과의 스텝이 어긋난다. 음악을 듣고 거기에 반응하기만 해도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힘을 빼고 내버려 두었을 때 우리의 두뇌는 더욱 활발히 움직이는 것이다. 나를 잊고 상대방에게 집중할 때 자연스럽게 대화가 진행되고 그러다 보면 정말 더 재치 있고 적절한 멘트가 즉흥적으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