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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신자유주의의 토대

소소한녀자 핫24시 2021. 3. 25.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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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순수한 이론이다. 실은 심각한 결함이 있는 이론이며 실제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런 결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조차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케인스와 프리드먼의 이론과는 달리 기업이 통제하고 있는 미디어에서 논쟁이 된 적도 없다. 대신 비판자들을 평평한 시구인이나 '이단자' 또는 세상에 대안이 없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괴짜'라는 식으로 무시하거나 조롱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본질적으로 신흥 종교의 색채를 띠고 있는 근본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이자, 경제학을 정책 도구에서 어떤 의심도 제기되어선 안 되는 삶의 철학으로 격상시킨 신념 체계인 것이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신자유주의를 비현실적인 유토피아, 인류의 재앙일 뿐 아니라 돈만 중시하는 유감스럽고 서글픈 삶의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런던 정치 경제 대학교에서 유럽 사상사를 가르쳤던 존 그레이는 신자유주의가 미국의 프로젝트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구식 세계관 17세기 계몽주의의 유산이며, 미국의 가치를 지구 상의 마지막 남은 곳까지 투영시킬 수 있다는 잘못된 가설"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유토피아', '특이함', '신학'의 프로젝트가 운이 다해 실패하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유럽형, 일본형, 러시아형, 인도형 등 서로 다른 지역적 전통과 문화적 가치에 뿌린 내린 무수히 다양한 유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국형 모델을 부정하면서 '더 나은 경제성장과 저축률, 교육 수준과 가족 안정성'을 실현하고 있다. 그러니 굳이 미국 모델을 따라 할 이유가 없다. 미국 내에서도 신자유주의는 '억압되고 부정되고 저항을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자유시장의 인간적 비용은 미국의 담론에서도 금기시되고 있는 주제'인 형국이다.
반(R) 세계화 비정부기구(NGO, 비영리 시민단체)인 국제금융과세연대 (ATTAC)의 프랑스 지부 부회장을 맡고 있는 수전 조지는 그러한 이슈들에 대한 논의가 거부되고 있는 타당한 이유를 밝힌다. 그녀는 모든 신자유주의적 현상을 미국의 대단히 부유한 소수 우익들이 지난 30년 넘게 수행해온 의식적이고 체계적인 전략 탓으로 보고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신자유주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였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그런 사람들을 괴짜로 취급했다. 누구도 그것이 하루아침에 사회를 지배하는 규칙이 되리라고 믿지 않았다.
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당시의 일반적인 정서를 "시장 메커니즘을 인류와 자연환경의 운명을 지시하는 유일한 것으로 허용한다면 이는 사회의 소멸을 낳을 것”이라고 묘사했다. 밀턴 프리드먼 같은 보수적인 경제학자도 "경제와 정치권력을 한 손에 줘어준다면 이는 확실한 폭정의 비법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수전 조지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성공한 건 '완전히 멋진' 이데올로기와 홍보 전쟁 덕분으로 "돈을 주고 매입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와 교리를 발전 및 포장, 추진하기 위해 재단과 조직, 연구소, 출판계, 학계 PR단체 등의 거대한 국제 네트워크'에 자금을 지원해왔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는 그들이 주장하듯이 필연적인 역사적 발전이 아니다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창조한 '전적으로 인공적인 건축물'이다.

수잔 조지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목적은 '공공에서 민간으로 부를 이전하는 것'과 '밑바닥 계층에서 최 상위 계층으로 부를 이전하는 것'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 세대든 그 어떤 세대든지 가장 큰 강도질"이라고 말했다. 오늘날의 결과를 보면 그들은 매우 성공적으로 목적을 달성했다. 그들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수억 달러를 쓰는 것을 감안할 때 그들의 영향력이 거대한 건 놀랍지 않다. 신자유주의 옹호자들의 글을 읽거나 강연을 들을 때면 그 이면에 있는 엄청난 자금을 머릿속에 떠올려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신자유주의의 진실을 꿰뚫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언어를 교묘히 사용해서 이슈를 혼란시키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메시지를 대단히 교묘하게 포장하기 때문에 실제와 정반대 되는 인상을 준다. 이러한 현상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뉴스피크'라는 단어가 연상될 정도다. 거짓말만 하는 진실부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수전 조지의 분석에 따르면, 신자유주의자와 그들의 공보 비서관들은 대단히 의식적으로 말을 교묘하게 한다. 그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서구형 인간과 텔레비전 영상 세대는 주목 기간이 짧다는 걸 활용했다. 그 뻔뻔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세계화, 민족주의, 그리고 자유무역. 세계화 신자유주의자들은 세계화를 진화의 과정이라고 선전했다. 그들은 "세계화는 불가피하다", "반세계화론자들은 미래를 두려워하는 과거 동경적인 러다이트들이다", "다른 대안은 없다"라고 말한다. 미디어는 소유주의 지휘 아래 WTO와 세계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평평한 지구인들, 건달, 무뢰한, 심지어는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한다. 여기에는 대화가 없고 비판을 비켜가기 위한 '뉴스피크'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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