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자들은 세계화가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 정치적 선택의 문제에 불과하다. 그들은 세계화가 국가와 문화 간의 상호의존과 협동에 관한 것이며, 통신과 운송 기술의 발달은 외국 문화를 더 높게 평가하도록 자극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반쪽짜리 진실이다. 세계화는 인간과 환경을 희생시켜 자신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각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초국적 기업의 작품이다. 이 과정에 세계의 분열과 갈등에 대한 책임이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반대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대개 협동을 좋아하고, 그것이 인권과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다른 문화로부터 배울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문화적 다양성과 통합 필요성도 인식하고 있다. 이들은 경제 시스템을 기업의 욕망보다는 인간과 자연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으로 변화시키려고 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반대론자들의 이데올로기를 '민족주의'와 '보호주의'라고 매도한다. 그렇게 신자유주의 반대 교리를 나치즘 혹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과 같은 부정적인 개념들과 동일시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앞서 '보호주의'라는 단어에 담긴 신자유주의자들의 위선을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민족주의'에 대해서 살펴보자.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시류에 맞춰가는 자애로운 '국제주의자'로 포지셔닝하고자 애를 쓴다. 그들의 반대자는 시류에 역행하는 감상적인 '민족주의자'로 미래를 두려워해 옛것을 지지하고 지난 정책을 옹호하는 형편없는 '보호주의자'라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먼저 당신 나라의 가치와 문화, 지역 공동체와 복지 상태, 식량 안전 보장, 지역 기업들이 외국의 약탈자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하는 게 잘못된 일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주권 국가는 외국으로부터 간섭받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정부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에 하나가 그것이다. 국가의 가치를 보호하는 것은 인종적 우월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데도 신자유주의자들은 그럴 것이라고 암시한다. 당신의 문화와 전통은 정당하게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그러한 사람들을 '문화적 민족주의자'라고 부르기로 하자.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경은 과거의 산물이라며 '국경 없는 세계'에 대해 말하는 것을 즐긴다. 이는 다국적 기업에게는 이익이겠지만 나머지 세계에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우리의 문화적 유산이 끝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문화적 다양성은 생태적 다양성과 같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야말로 문명의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세계인들이 끊임없이 교류하는 지구촌을 육성한다는 긍정적인 관점에서 국제주의자가 되는 것과. 당신이 태어난 나라와 문화를 외국의 상업적 착취로부터 보호하고 다른 문화에도 같은 권리를 보호해주는 문화적 민족주의자가 되는 것 사이에 모순이 있을 리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부분의 반세계화론자들은 국제주의자면서 문화적 민족주의자다. ATTAC가 말하듯이 그들은 세계화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기업 주도의 세계화를 반대할 뿐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부도덕한 국가들이 무역 상대국으로부터 불공정한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사회적·환경적 보호라는 명분을 이용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좁게 정의된 국가 안보라든가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과학적 증거 등의 이유가 아니면 무역에 어떤 제약도 가해서는 안 된다는 해법을 제시한다. 이러한 보호막이 없다면 WTO의 지배에 따라 모두의 목구멍에 해외 제품이 밀려들어 올 테고 처참한 사회적 · 환경적 결과가 야기될 것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이 문제에 대한 보다 좋은 해결책은 외국 자본의 품으로 주권 국가의 권리를 넘겨주라는 요구를 하지 않는 것이다. 국가가 합법적으로 사회적 ·환경적 이익을 지킬 수 있는 권리를 부정하는 시스템은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